네가 어디에 있느냐?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 된 인간을 향해 처음으로 던진 질문입니다. 창조주께서는 인간이 거주하기에 완벽한 환경의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를 동산지기로 세우십니다. 그들은 그 낙원에서 영원토록 아무 수고와 걱정 없이 즐기며 살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습니다. 거기에는 단 하나의 조건만 있습니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얼마나 좋았을까요? 고통도, 수고로 힘들어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하루하루 하나님이 주신 풍요로운 땅에서 그저 즐기며 지내면 됐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창조주에 대한 의심, 아니면 호기심이 생겼을까요? 그다음 이야기는 우리가 다 아는 대로 뱀의 유혹을 받아 그 열매를 따서 먹은 것입니다. 왜 그래야 했을까요? 무엇이 부족하기라도 했던 것일까요? 에덴동산의 환경은 ‘완벽’ 그 자체였습니다. 더는 무엇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려다 천상에서 쫓겨난 사탄의 유혹에 그만 넘어갔습니다.

adam eve‘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은 먹는 그 즉시 죽는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영적인 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그들은 바로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자 가장 먼저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두려움입니다. 사랑과 신뢰의 대상이 두려움의 대상이 됐습니다. 명령을 어긴 인간은 하나님을 피하려 도망치고 숨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몰랐던 자신들의 벗은 몸에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있었어야 할 자리가 어디입니까? 바로 하나님 앞입니다. 사람은 자기 자리를 지킬 때 아름답습니다. ‘아담’은 모든 인류를 지칭합니다. 그러기에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질문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질문과도 같습니다. 나는 이 땅에 올 때부터 부여받은 자리를 알고 있습니까?

지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까?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지키라고 명령한 장소에 있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켜야 할 그 자리를 이탈했을 때 ‘죄’가 그 자리를 대신 하게 됐습니다. 그 ‘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은총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죗값을 대신 지불했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참된 인생이 시작됩니다.

독일의 문호 프리드리히 쉴러가 시간에 대해 이런 말을 합니다. “시간의 걸음걸이는 세 가지가 있다. 미래는 머뭇머뭇하면서 내게 다가온다.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간다. 과거는 영원히 정지해있다.” 과거는 정지해 있고 변하지 않으며 바꿀 수도 없습니다. 현재만이 움직입니다. 오늘만이 움직입니다.

어느 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새해 결심이 성공할 확률은 8% 이하라고 합니다. 25%의 사람들은 일주일 만에 새해 결심한 것을 포기했고, 30%는 2주 안에, 그리고 한 달 안에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포기했다고 합니다.

2019년, 새해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새해를 위해 어떤 계획을 세우셨나요?

성경은 말합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야고보서 4:14).

성경은 또 말합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마가복음 8:36-37).

오늘 해야 할 가장 소중하고 급한 일은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일,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