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형제를 지키는 자입니다

나는 내 형제를 지키는 자입니다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에덴의 동쪽 지역에 거주합니다. 아담은 흙을 경작하는 농부가 됩니다. 그리고 인간은 신이 허락한 자연이 주는 열매를 따 먹는 수동적인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며 시간의 지배를 받는 존재가 돼 언젠가는 죽게 됩니다.

저들 사이에 가인과 아벨이 태어납니다. 이들을 통해 인류의 불행한 또 하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형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이는 사건을 저지르고 맙니다. 첫째 아들인 가인은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농부가 되고, 둘째 아들인 아벨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양을 치는 유목민이 됩니다.

어느 날, 두 형제는 각각 여호와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는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하나님은 동생 아벨의 제물과 제사는 받으셨지만, 형 가인의 것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 일로 분노한 형은 동생을 죽이는 인류 최초의 비극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여호와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 동생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이에 가인은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라는 질문으로 되묻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 가족이든 이웃이든 내 주위에 있는 사람을 함께 돌보며 살기를 원하셨지만, 가인은 이 바람을 저버렸습니다.

2004년 보스턴에 있는 플리트센터에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존 케리 상원의원을 위한 찬조연설을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버락 오바마가 맡습니다. 그는 시카고 출신의 케냐 이민자 2세로 일리노이주 민주당 상원의원에 출마한 정치 신인이었습니다. 17분간 이어진 그의 연설은 전당대회장에 있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TV를 시청하던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만일 시카고 남부에 글을 읽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면, 그 아이가 제 아이가 아닐지라도 그 사실은 제게 중요합니다. 만일 어딘가에 약값을 지불하지 못하는 노인이 의료비와 월세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그녀가 제 할머니가 아닐지라도 제 삶마저 가난하게 됩니다. (중략)

저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저는 제 형제를 지키는 자입니다. 저는 제 자매를 지키는 자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나라를 작동하게 합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개인적인 꿈을 추구하지만, 미국이라는 하나의 가족으로 모이게 하는 것입니다.”

오바마는 창조주 하나님의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한 것입니다. 우리도 대답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자신만을, 내 형제만을 지키는 존재입니까? 아니면 내 주변에서 불행을 겪는 모든 사람을 지키는 존재입니까?

“성경” 누가복음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당시 성경에 정통했던 어느 율법 학자가 예수께 묻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내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러자 그는 재차 묻습니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마치 가인의 대답과 같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웃을 사랑하고 돌보라고 말합니다. 힘없고 어려운 자들의 이웃이 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신만을 생각하는 자의 눈에는 이웃은 없습니다. 우리가 돌봐야 할 이웃은 누구입니까?